아버지의 해방일지?
한창 뜨거웠던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 눈에 띈 책의 제목.
이 책은 필시 '나의 해방일지'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목적으로 출판사에서 원래 정해져 있던 책의 제목을 출간 즈음에 작가의 고집을 꺽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갑자기 변경했으리라는게 나의 추측.
그런데 왠걸 시간이 갈수록 여기저기서 자주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귓가를 파고들고 눈에 띄기 시작한다.
결국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도 슬쩍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음이 가지는 않았던터라 다른 것들에 밀려 쉽게 결제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러 번의 우연과 여러 잔의 와인이 겹쳐 내 손에 안착.
첫시작은 웃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화자인 아리의 표현을 빌리면 이건 마치 만우절 거짓말같다).
마지막은 울린다.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아리는 오래쥐고 있어 따스해진 아버지의 유골을 느끼면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라지고 아버지가 해방되었다만 남았다. 아버지는 드디어 사상의 굴레에서 삶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고향인 구례에서도.
그리고 장례식 과정에서 그동안 몰랐던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아버지의 다양했던 모습을 알게 된 아리는 자신이 스스로 갇힌 빨치산의 딸이라는 태생적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내 섣부른 판단이 틀렸다. 이 책의 제목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여야만 했다. 정말 정직한 제목이다. 그리고 '나의 해방일지'이기도 하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그저 선수를 친 것일 뿐.
책은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의미는 다르다.
4.3사건, 여순사건, 5.18민주화운동마저 그저 먼 이야기인 내게 빨치산 아버지와 그의 자녀에게 지워진 굴레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빨치산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수많은 굴레에 얽매어 산다. 때로는 스스로 만들어 매이기까지 한다. 스스로 옭아매 놓은 굴레에서 해방되어 보자. 그런다고 무슨 일이 있을리 만무하고, 어떻게든 될거다.
이제 '나의 해방일지'를 써보자. 남(아리)이 대신 뒤늦게 나(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써주기 전에.
선배님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일요일 잘 마무리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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