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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도움/ 1회김현호(교사/고려고)
2019년 9월 28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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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고 사안에 대한 두 번째 글) - kbs 정병준 국장 글입니다.
증오와 배제의 언어를 거두십시오.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인연이란 게 참 쉽지 않은가 봅니다. 얼마 전 고려고 사안에 대해 토론을 연 인연으로, 이 사안을 주의 깊게 지켜보게 됩니다. 그로부터 10여 일, 뜨악하게 놀라고 있습니다. 고려고와 관련해 날아다니는 언어들이 너무 거칠어서입니다. ‘이런 게 교육계의 언어인가’ 회의가 듭니다.
논의가 너무 저급해서 우수꽝스러운 것도 있습니다. ‘해임에 파면이 포함되는냐’는 논의가 대표적입니다. 이것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법 상식의 문제입니다. 특정 범죄의 처벌에 실형만 규정되어 있으면, 더 가벼운 벌금형으로도 처벌할 수 없는 게 법상식입니다. 하물며, 규정에도 없는 강도 높은 처벌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스스로 상식 부족을 드러내는 얘기일 뿐입니다. 그것이 형법이 아니고 행정법 규정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광주시교육청 안에도,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할 공무원들이 적지 않을 텐데,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걸 상급기관에 질의했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 이하의 논의가 왜 나오는 걸까요? 그것은 상대를 아예 교육 현장에서 배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겁니다. 규정에도 없는 일을 강행하고 싶은 마음, 이런 마음을 아집(我執)이라고 표현한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교육청이, 그리고 이 사안에 나서고 있는 교육관련 시민단체가, 사안을 편견없이 보고 있는지도 묻고 싶은 대목입니다. 사안은 고려고 학생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에서 시작됐습니다. 선생님들이 기숙사에 살고 있는 소수의 학생들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학생들의 인사를 받지 않는다는 불편한 내용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고에 대한 특별감사에서, 교육청은 이런 주장을 사실로 규명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고려고에 대한 처벌은, 규명된 사실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것이 법치국가입니다. 그동안 고려고가 교육청의 지침에 저항해 왔다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질 수 없습니다. 법치국가에서는 법 규정이, 고려고에 박힌 ‘미운 털’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육청이 고려고 교사들을 사법당국에 고발했다는 데에 이르면, 지나침이 도를 넘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형법은 고의범 처벌을 원칙으로 하고, 과실범은 예외적으로 특별한 규정이 있을 때만 처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교사들의 범죄의도를 밝히지 못한 교육청이, 어떤 규정을 들어 교사들을 형사고발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수사기관이 조사를 마친 뒤 과연 교사들을 기소할 것인지, 기소를 한다면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될지 지켜 볼 일입니다.
수준별 이동수업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전국 15개 교육청에서는 허락하는 일을 광주시 교육청은 부득부득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교육청 관계자가 내놓은 대안은, 교실 내에서 수준을 나누어서 수업하라는 것입니다. 이 방식을 택하려면 한 교실에 교사가 2-3명씩 들어가야 합니다. 현장은 그럴 여건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광주지역에서 시행하는 학교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육청의 지침이 너무 이상적인 건 아닐까요? 교육청의 지침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장을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시 실현 불가능한 지침 때문에, 교육청 스스로 현장에서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이라는 단체의 활동에는 더 안타까운 일들이 많습니다. 이 단체는 고려고 관련자들을 형사처벌하라고 고발하고, 현수막은 불법이라고 신고하고, 책임자는 처벌하라고 합니다.
쓰이는 단어들은 모두 처벌, 고발, 파면, 철거.........증오와 배제의 단어입니다.
그래서 드는 가장 큰 걱정은,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울까 하는 것입니다. 보고 배운 것이 무섭다고 합니다. 가르쳐 배운 것보다, 보고 배운 것이 더 효과가 크다는 건, 교육을 생각하는 분들은 다 아는 얘기일 겁니다.
그런데 연일 어린 학생들 앞에서, 어른들이, 교육청이, 교육시민단체가, 배제와 증오의 반교육적 언어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이미 우리의 교육 현장에는, 싸우고 화해하며 함께 커가는, 옛 친구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거친 말 한마디에도 학폭위가 열리고, 거기에 친구를 고발하는 피해자와 자신을 변호하는 가해자가 있을 뿐입니다.
학벌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합니다.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가 매일 증오와 배제의 언어로 가득 차있다면, 학력 차별이 없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또 고려고 현수막을 불법 광고물이라며 철거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것임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려고에 대한 교육청의 처벌을 비판하는 일은 우리 국민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당사자인 고려고 자신은 더 더욱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인터넷의 그 무수한 글들을 보십시오. 어떤 글들은 국가의 최고 권력자를 지독하게 비판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글을 삭제할 엄두조차 낼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 국민의 권리를, 교육청이나 특정 시민단체가 보기 싫다고 해서 침해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시민단체들이 시위에 들고 나가는 현수막, 1인 시위에 사용하는 피켓, 모두 광고물법으로 단속하는 날이 올 지도 모릅니다.
교육청은 이번 감사에서 특정 학생들을 위한 특혜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안은, 처벌을 해야 할 사안이라기보다 교육적 논의를 해야 할 사안입니다. 수준별 이동수업이 상위권 학생들 뿐 만 아니라, 하위권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고려고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부분에 대한 재논의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 방식이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논의도 함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광주시교육청의 감사방식이,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다뤄야 할 ‘교육 행정’과 상대적인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할 ‘학사운영’의 일에, 차이없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점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지점입니다.
교육청의 일련의 강압적 태도를 겪으면서, 교육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제 어느 교사가 열심히 가르치려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교육청의 이런 행태가 공부를 열심히 가르치려던 교사들의 의욕을 꺾고, 슬슬 편하고 싶은 교사에게는 핑계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장휘국 교육감의 10년, 실력광주를 자랑하던 광주 교육의 실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런 현실을 대단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광주교육청의 방침이 변하지 않고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오를 기회조차 놓친 학생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현실을 이야기해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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