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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만나는, 칼의 노래/ 9회 문병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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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칼의 노래는 군대에서 읽었습니다.
해군 정훈장교로 교육사령부에서 근무했습니다.
더욱 자세히는 교육사 산하 해군충무공수련원에서 근무했으니
이충무공과 관련된 책 한 권 읽지 않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던 배경이 있습니다.
물론 정훈 교관이기 때문에 국가관, 직업관, 사생관 등에 더욱 익숙했으나,
‘약무호남 시무국가’ 정도의 구절은 읊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래도 칼의 노래란 책이 없었다면,
‘필사즉생, 필생즉사’, ‘전방급 신물언아사’라는
오로지 국가를 위해 죽고 사는 신념으로만 추상화된 전쟁영웅이 아니라
임금의 비겁함을 욕하고, 아군의 무능과 추잡함도 한탄하는 구체화된 인물을 접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전역 후 언론사 시험을 볼 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질문.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앵무새처럼 ‘칼의 노래’와 ‘대망’을 반복했습니다.
침략전쟁에 동조한 인물과 그것을 막아낸 인물.
둘을 일부러 대비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고,
그땐 정말 최근에 읽은 책들 전부라 부득불이었습니다.
모두 나름의 사명의식으로 한 삶을 살다 간 역사적 인물들이었지만,
그게 너무 무거웠던지 시험에서는 모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탈락이 좋은지 나쁜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칼의 노래를 사회인으로서 다시 읽었습니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미문,
두 세 번은 생각해야 할 시적인 묘사는 여전했습니다.
다만, 강렬했던 고뇌는 10년이 지난 오늘 왠지 허망했습니다.
나조차도 큰 뜻과 선한 의지로만 살지는 않고,
교감할 수 있는 어떤 시대정신도 없는 혼돈이며,
임금은 오히려 선조보다 못하고, 아군의 능력은 여전히 미궁인 상황.
의지를 갖기보다는 냉소하기 쉬운 시대에 다시 읽은 칼의 노래는,
그 모든 구체성마저 다시 추상화되어버린 전쟁영웅과,
추상화된 만큼 따라갈 수 없는 격차만 확인하는
자아성찰의 기회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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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독후감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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