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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11-13 10:32
11.11 칼의 노래~/ 5회^^
 글쓴이 : 박윤정
조회 : 121  
5회 박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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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노래/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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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턴가 책을 완독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독서와 멀어진거 같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독서를 한적이 별로 없었던거 같다. 최근 3년 내에 자기 개발 서적 몇권을 구매하긴 했는데 읽다, 안읽다를 수차례 반복만 했지 끝까지 완독을 한 적이 없다. 그랬던 나에게 우연찮은 기회에 2권의 책이 생겼고 책일 읽어야 하는 목표가 주어졌다. 그리고 독후감을 써야 되는 것 까지가 최종 목표다. 오늘 2023년 11월 11일이 D-day다. 

오늘도 회사에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남은 잔업을 마무리 하고 밀린 숙제를 한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이 유명한 책은 난중일기를 토대로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백의종군하는 시점 부터 노량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하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고 장군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의 고민과 고뇌에 대해 쓴 소설이다.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7년 초 충청, 전라, 경상도 3개지역의 수군을 지휘하던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당하고 한양으로 압송되어 투옥되어 고문을 당한고 각종 고초를 겪게 된다. 그를 견제하려던 일본의 계책과 이순신의 정적들의 공격에 조선의 조정이 말려든 결과였다. 잘못된 상황으로 인해,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책임을 지게 되는 현실이 우리의 시대와 비슷하다. 

이순신! 책을 읽는 동안 이순신 장군은 장군으로서, 인간으로서 많은 고민을 한다. 고민이 참 많았던 것 같다. 그가 처한 전쟁이라는 환경도 있었지만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선조는 이순신에게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들이 곧 부산으로 넘어오니 기다리고 있다가 가토의 머리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했으나 이순신은 명령을 거역했다고 하여 이순신을 구금하고 고문 한다. 
일본군이 부산으로 넘어온다는 정보를 믿을 수 없었고, 추운 겨울바다에 몇일이고 진을 펼치며 언제 올지도 모르는 적을 기다릴 수 없었지만 선조는 수군이 몰살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않은채 오직 가토의 머리만을 원했다. 그렇게 원하는 가토의 머리를 이순신이 거역하였으니 도원수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고 이순신의 자리를 원균이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원균은 대규모의 군을 데리고 칠천량 앞 바다 전장을 나갔으나 조선의 수군 대부분은 궤멸당하고 원균도 전사한다. 이때가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배인 칠천량 해전이다. 

이제서야 선조는 당시 상황을 수군 전군 대패로 인식했을 만큼 큰 위기를 느끼고 충청도와 전라도에 남은 배가 있는지 확인하고 이를 끌어모아 수군을 꾸리라고 다급하게 지시한다.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고자 한것인지 두려움을 느낀건지 모르겠지만 이순신을 다시 불러 들여 삼도수군 통제사로 복귀시키면서 내린 선조의 첫 번째 임무였다. 

이때부터 이순신의 고민은 더욱 시작된것 같다. “나는 가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
이순신은 본인의 운명을 알고있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아니 미래의 불행한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양을 버리고 간 선조에게 믿음도 없었지만 신하인 입장으로 임금을 섬겨야 하는 도리를 저버릴수 없었기에 선조에게 죽을 운명이라면 전장에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고 조국이 평안해지기를 바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해 9월 이순신은 겨우 전선 12척으로 일본 수군 적선 300여척을 명량 수로로 유인해 전세계 해전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이룬다. 

이렇듯 이순신 장군은 불행한 운명에 대항하여 승리한다. 하지만 백성을 위하는 마음과 백성들의 죽음, 그들을 지키지못했다는 마음,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어머니, 아들, 여진의 죽음을 막지 못했고, 지키지 못했고, 죽음을 지켜만 봐야했던 고통을 느끼며 자신의 무능에 심하게 자책하며 아파했다. 이순신은 이런 아픈마음, 개인사를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 백성들을 살리고 조선을 괴롭힌 일본군을 어떻게든지 응징하고자 하는 대의에 더욱 집중하고 몰두하여 행동으로 바꾸어 나선다. 

정유재란의 시발점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일본으로 철수하던 적들과 7년 전쟁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해서 전투중에 이순신장군은 전사하게 된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마라”
죽으면서까지 전정의 싸움에서 패할까봐. 동료들과 대의를 위했던 이순신!
이순신 장군은 그곳에서 전사했다. 신하된 입장으로 임금을 모셔야 하지만 정작 임금에게 버림받았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싸웠다. 뒤늦게 알게 된 이야기지만 선조는 이순신의 죽음에 흔한 애도의 말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비문은커녕 시호 조차 내려주지 않았다. 그의 시호 충무공은 인조가 훗날에 내려주었고, 비문은 한참 지난 뒤에야 정조가 내려 주었다고 한다. 

나는 수많은 책, 방송, 영화를 통해 이순신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그가 겪었을 고민에 대해 이제 조금이나마 생각해 본다. 

나를 죽이려고 했고 언젠가는 죽일거라고 생각하는 임금을 끝까지 등지지 않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백성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던 충무공 이순신. 

멋있다.

그런데 작가는 왜 책의 제목을 칼의 노래라고 했을까?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칼의 노래’. 이순신 장군이 직접 지어 장검에 새겨진 검명 ‘일휘소탕 혈염산하’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이순신 장군은 검명을 통해 본인이 처한 운명에 대항하여 백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본인의 손에 많은 이의 피를 묻히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왜 칼의 노래인지 잘 모르겠다. ^^ 

우리는 많은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산다. 이를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많은 상황이 바뀌는거 같다. 이순신 장군은 암울한 미래이고 해답이 없더라도 어떻게 하면 마지막 희망의 불씨라고 살려볼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대승이라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내가 이순신이였다면 비극적인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적을 응징할 수 있었을까? 고민이 많았던 이순신 장군이였지만 걱정이 이순신 장군을 삼키게 두지 않았다. 나 또한 많은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고민과 걱정이 나를 삼키게 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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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 23-11-13 10:45
답변  
지리산 와운 마을에서...후배님 독후감 읽었습니다..색다른 경험~
박윤정 23-11-13 10:47
답변  
2024.1.21 일요일 1박2일팀~~

5회정행연경감
5회박준성베르힐cc
12회장민준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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